모든 자녀의 부양료를 과거의 것이든 장래의 것이든간에 부에게 청구할 수 없다고 본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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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0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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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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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법 1975.4.1. 선고 74르34,74르35 제3특별부판결 : 상고 【부부동거등이혼청구사건】 [고집1975특,489]
【판시사항】 1. 민법 840조 6호의 이혼사유가 있다고 본 사례 2. 모든 자녀의 부양료를 과거의 것이든 장래의 것이든간에 부에게 청구할 수 없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1. 청구인은 시어머니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시어머니를 모시기 싫다고 하여 분가를 고집하면서 피청구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스스로 별거생활을 자행함으로 인하여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혼인 생활의 질서는 이미 균형을 잃어 다시 정상의 상태로 회복될 가망이 없으니 민법 840조 4호의 이혼사유는 물론 6호의 이혼사유가 있다. 2. 피청구인이 청구인에게 여아의 인도를 요구하여 왔고 여아의 장래를 보아서도 피청구인이 양육하는 것이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청구인은 피청구인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이상 부모는 원래 모두 자식을 부양할 의무가 있는 것이므로 여아의 부양료를 과거의 것이든 장래의 것이든간에 피청구인에 대하여 이를 청구할 수 없다.
【참조조문】 민법 제840조 , 제974조
【참조판례】 1976.6.8. 선고 75므17,18 판결(판례카아드 11254호, 대법원판결집 24②민132, 판결요지집 민법 제974조(3)619면, 법원공보 542호9278면) , 1967.1.30. 선고 66므40 판결(판례카아드 4337호, 대법원판결집 15①민49, 판결요지집 민법 제974조(1)618면) , 1967.2.21. 선고 65므5 판결(판례카아드 4340호, 대법원판결집 15①민107, 판결요지집 민법 제974조(2)619면)
【전 문】 【청구인, 반심판피청구인, 항소인 겸 피항소인】 청구인
【피청구인, 반심판청구인, 피항소인 겸 항소인】 피청구인
【원심판결】 제1심 대구지방법원(73드364,444 심판) 【주 문】 원심판중 피청구인(반심판청구인)의 패소부분을 취소한다. 피청구인(반심판청구인)과 청구인(반심판피청구인)은 이혼한다. 청구인(반심판피청구인)의 청구와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1, 2심을 통하여 본심판 및 반심판에 관한 비용 모두를 청구인(반심판피청구인)의 부담으로 한다.
【본심판청구취지 및 청구인(반심판피청구인)의 항소취지】 피청구인(반심판청구인)은 청구인(반심판피청구인)에게 동거에 이르기까지 매월 돈 103,000원을 부양료조로 지급하라. 피청구인(반심판청구인)의 반심판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피청구인(반심판청구인)의 부담으로 한다. 【반심판청구취지 및 피청구인(반심판청구인)의 항소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먼저 반심판청구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공문서이므로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갑 1호증(호적등본)의 기재에 의하면, 청구인(반심판피청구인, 이하 청구인이라 약칭한다)과 피청구인(반심판청구인, 이하 피청구인이라 약칭한다)은 1969.12.23.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로서 그 사이에 1녀를 출산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공문서이므로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을 5호증(조사보고서), 을 7호증( 청구외 1신문조서), 을 8호증(약식명령), 을 10호증( 청구외 2진술조서), 을 12호증( 청구외 1진술조서)와 위에 나온 갑1호증의 각 기재, 원심증인 청구외 1, 3의 각 증언에 당심에서의 청구인과 피청구인에 대한 본인신문의 결과(청구인에 대한 본인신문결과중 믿지 아니하는 부분제외)와 변론의 전취지를 합쳐보면, 청구인은 광산업을 하는 청구외 4의 2남 3녀중 차녀로 자라나,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경제기획원에 약 2년반동안 근무하다가 27세때인 1968.11.29. 중매에 의하여 피청구인과 결혼식을 올리고, 이후 동거해 오면서 그 사이에 1녀를 출산하였고, 피청구인은 3남 4녀의 장남으로 자라나 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취직이 된 후 야간으로 대구청구대학 상과를 졸업하고, 한국외환은행으로 직장을 옮겨 근무하던중 29세때에 청구인과 혼인하였고, 피청구인은 신혼초부터 홀어머니인 청구외 2(1911.9.14.생)와 미혼인 5명의 동생을 부양해야 한다는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강한 성격인데 반하여 청구인은 부부만의 단란한 생활을 꿈꾸는 성격이어서 그 성격상 차이에서 시가식구들의 부양 및 동거문제를 두고 심한 감정상의 갈등이 생겨 애정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는데 청구인은 (1) 신혼초 약 1년간 그 자신의 고집에 의해 시어머니와 시동생들을 서울 반포동에 전세집을 얻어 별거케하고, 피청구인의 여동생 2명(직장과 학교의 거리관계로)과 같이 서울 회현동에 전세방 2칸을 얻어 살아왔는데도 시누이 2명의 꼴도 보기싫다는 이유로 밥도 짓지않고 이들을 냉대함은 물론 혹 시어머니가 찾아오면 제대로 대접하기는 커녕 핑계를 꾸며 외출하여 버리거나,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있기가 일수이고, (2) 여아를 출산한 후인 1969.12.24.경 서울 갈현동으로 이사를 하고, 시어머니가 손녀를 돌보기위해 약 1개월간 와 있는 동안 청구인은 아예 취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세탁도 자기옷외에는 일체 손도 대지 않으면서 거의 매일 아이는 시모에게 맡기고 볼 일이 있다는 이유로 외출하는 바람에 시어머니는 고생만 하다가 돌아간 일이 있고, (3) 1970.5.경 피청구인의 설득으로 시어머니와 합가하게 되자, 거의 매일같이 시어머니와 언쟁하고, 심지어 호년까지 하고 지내다가 같은해 6.4.경 친정여동생이 찾아오자 시어머니께 "악독한 시어머니 때문에 못사는 줄 알아라.", "내가 나가거든 반성하라.", "과부할미야."등의 폭언을 남기고, 시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친 채 여아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서 여아의 돐, 시어머니의 회갑, 추석 다례등이 지나도 한마디 소식도 전하지 않고 지내다가 약 4개월후에 귀가한 일이 있고, (4) 1971.3.18. 피청구인이 저녁음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는 이유로 즉석에서 "이새끼 어디가면 남자없나, 너어미하고 잘 살아라."는 폭언을 남기고 가출한 일이 있고, (5) 같은해 4.8.에는 친정아버지 청구외 4와 남동생 청구외 5를 데리고 와서 합세하여 시어머니께 "처음부터 분가하여 단둘이 살아가도록 하는 조건으로 결혼해 놓고 이제와서 그 약속을 어겨 왜 시모를 모시게 하느냐, 분가시킬 대책을 세워달라."고 강청하면서 "이년, 저년"이란 말을 함부로 하고, 그시 청구외 4와 청구외 5는 시어머니 청구외 2와 시동생 청구외 3을 구타하여 상처까지 입히고, 이로 인하여 벌금 20,000원의 처벌까지 받은 사실이 있고, 그날부터 청구인과 피청구인은 별거하기 시작하여 청구인은 여아를 데리고 친정에서 기식을 하며 지내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는 살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아니한 채 이사건 청구에 이르게 되었고, 피청구인은 한국외환은행 대구지점으로 전출되어 은행합숙소 및 친지들의 집을 전전하면서 홀로 지내고 있으면서 청구인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할 의사는 털끝만큼도 없어져 버린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일부 배치되는 원심증인 청구외 4, 6, 7의 각 증언과 청구인 본인에 대한 원심 및 당심에서의 신문결과는 믿지 아니하는 바이고 달리 반증이 없다. 위 인정사실에 미루어보건대, 청구인은 핵가족생활만을 염원한 나머지 시어머니와 시누이, 시동생등과의 합가를 심히 기피하는 성격이어서 결혼초부터 고령인 시어머니를 냉대하고, 한번도 제대로 모시지 아니하여 오다가 이를 간곡히 만류하는 남편인 피청구인에게 장남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릴 것을 강요하는데까지 이르게 되고, 피청구인이 그 강요를 물리치고 시어머니등과 합가생활을 고집하자 급기야는 여아만을 데리고 시어머니와 남편의 만류를 뿌리치고 친정에 돌아가 별거하기 시작하여 결국 위와 같이 피청구인과의 결혼생활을 파탄의 지경에 빠트린 결과를 볼 때 청구인이 저지른 행위의 정도는 비록 남편인 피청구인이 고집을 세우고, 간혹 시어머니와의 싸움에 뛰어들어 청구인을 때린 일이 있고, 또 시어머니가 다소 살림살이에 대하여 잔소리를 하였다하더라도 남편과 시어머니를 섬기고 자식들에게 어버이에 대한 존경심을 지니도록 가르치면서 가정을 이끌어 나가야 할 가정주부로서의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처사라고 볼 수 없고, 그 맡은 바 구실을 다하였다고 하기 어려운 바이니 결국 청구인의 시어머니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시어머니를 모시기 싫다고 하여 분가를 고집하면서 청구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스스로 별거생활을 자행함으로 인하여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혼인생활의 질서는 이미 균형을 잃게 되어서 다시 정상의 상태로 회복될 가망은 엿보이지 아니하는 바이니 이는 민법 제840조 4호의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을때 및 같은법조 제6호의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에 해당하는 재판상 이혼사유가 된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이 반심판청구로서 청구인과의 이혼을 구하는 것은 정당하여서 이를 인용하기로 한다. 2. 다음 본심판청구에 관하여 살핀다. 청구인은 주장하기를 청구인이 피청구인과 결혼한 당초부터 시어머니인 청구외 2의 질투와 이간이 심하고, 또 과년한 시누이들도 시어머니에 동조되어 피청구인과의 사이를 벌어지게 함으로써 피청구인도 이에 동조하여 가정화평을 위해 노력하는 청구인을 학대하고, 이유없이 구타하기에 이르러 1971.4.8. 드디어 시어머니와 피청구인의 학대에 견디지 못하고 시가에서 쫓겨나 피청구인과 사이에 출생한 여아를 데리고 친정에서 기식을 하고 있는 처지이며, 피청구인은 한국외환은행의 차장급으로 근무하면서 월급료 299,980원을 받아 상류생활을 하는 터이니 피청구인은 위 별거이후 앞으로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동거에 이르기까지 청구인과 여아의 양육을 위해 매월 금 103,000원의 부양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하는 바 살피건대, 이미 반심판청구부분에서 판단한 바와 같이 청구인 자신에게 책임있는 사유로 피청구인과 별거하기 시작하여 피청구인과의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된 사실이 명백하고 보면, 청구인은 피청구인의 처로서 동거, 부조의 의무를 스스로 위반하고 있으면서 그 자신에 대한 부양료의 지급을 피청구인에게 청구한다는 것은 법률상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것이고, 또 청구인이 자기의 애정에 의해 여아를 부양해 왔고, 기록에 의하면, 피청구인이 청구인에게 여아의 인도를 요구하여 왔고, 여아의 장래를 보아서도 피청구인이 양육하는 것이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청구인은 피청구인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음이 명백하고, 또 앞으로 피청구인이 여아의 인도를 요구하더라도 이를 물리치고 계속 자신이 여아를 양육하겠다고 청구인 스스로가 주장하고 있는 이건에 있어 부모는 원래 모두 자식을 부양할 의무가 있는터에 여아의 부양료를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장래의 것이든 간에 피청구인에 대하여 이를 청구할 수도 없는 법리라 할 것이니 청구인의 이건 부양료청구는 그 이유가 없다고 할 것이다. 3. 그렇다면 청구인의 본심판청구는 이유없어 기각하고, 피청구인의 반심판청구는 이유있어서 인용할 것인바 원심판중 피청구인 패소부분은 그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피청구인의 항소에 따라 이를 취소하고, 원심판중 청구인 패소부분은 정당하고, 이에 대한 청구인의 항소는 이유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고, 소송비용의 부담에 관하여는 가사심판법 제9조 , 민사소송법 제13조 , 민사소송법 제96조 , 89조를 각 적용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박돈식(재판장) 이정락 권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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